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의 전쟁범죄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범죄 == * [[731 부대]]의 [[생체실험]] (1936~1945)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을 상대로 자행한 생체실험. 일본 우익들은 죄수와 전쟁포로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다고 날조하지만 피실험자 상당수는 임산부였다. 그리고 일본 측에서 피해자를 죄수라고 주장하면서 마치 생체실험 피해자들이 흉악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사망자 목록에서 [[윤동주]]와 같은 온건 성향 독립운동가들의 이름도 발견된다. * [[난징 대학살]] (1937) 일본군이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에 진입한 이후 약 20만 명의 중국인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 참고로 난징대학살의 규모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리는데 최소 10만 이하에서 최대 30만 이상까지 거론된다. 현 중국 정부의 경우 30만설을 채택한다. 한편 주류 학계의 경우 추정치의 중간값인 20만설을 채택한다.] 대학살 과정에서 벌어진 [[100인 참수 경쟁]]도 유명하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도 연합국 포로들에 대한 유사사건이 많이 발생했는데 대표적으로 암본 전투에서 잡힌 포로 227명을 라하비행장에서 일본도로 처형했다. * [[마닐라 대학살]] (1944~1945) 일본군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필리핀인 10만여 명을 학살한 사건. * [[밀리환초 사건]] (1945) 태평양 마셜 제도에서 일본군이 한국인 100여 명을 학살한 사건. * [[바탄 죽음의 행진]] (1942) * [[베허호 사건]] (1944) [[토네급 중순양함]] 1번함 토네가 연합국 상선 베허호를 침몰시키고 선원들 100여명을 참수한 사건. 자세한 내용은 [[베허호 사건]] 항목 참조. * [[사이판 전투]] 당시 민간인 학살 (1944) 사이판 민간인 22,000여 명 상당수가 [[미군]]에 투항하지 않고 자살을 강요당했으며, 거부하는 자는 사살당했다. 이런 참극이 벌어진 원인은 [[쇼와 덴노]]가 사이판의 민간인들에게 칙명을 내려 자살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57&contents_id=68574&series_id=2585|사이판 전투 자료]] 참조. * [[산다칸 죽음의 행진]] (1942) 보르네오 수용소에서 연합군 포로 2,500여명 학살 * [[신멸작전]] (1939) 중국식 명칭인 [[삼광 작전]]으로도 알려졌다. * 싱가포르 화교 학살 (1941) 싱가포르 점령 후 6,000여 명 처형한 사건. [[츠지 마사노부]]가 주도적으로 행했다. * [[오키나와 전투]] 당시 인간방패 (1945) * [[일본군 위안부]] (1932~1945) 1932년 상하이 사변을 시작으로 1945년 패전 때까지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한 사건. * [[일본 해군]] 구축함의 전쟁범죄 * [[가게로급]] 구축함 [[아라시(구축함)|아라시]]의 포로학살. * [[유구모급 구축함]] 마키구모의 미군 포로 학살 사건. 자세한 내용은 [[마키구모(함대 컬렉션)]] 참조. * [[일본 해군]] 잠수함의 전쟁범죄 단, 민간선박을 격침한 일은 추축국은 물론이고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유독 일본 잠수함에서 많았다. 전쟁범죄에 가담한 생존 함장들은 대부분 4~8년형 정도를 선고받았다. * [[I-8(잠수함)|I-8]]의 상선격침, 승무원 학대 후 살해 사건 * I-177의 호주 [[병원선]] AHS 센터우르 격침사건 [[http://ko.wikipedia.org/wiki/AHS_%EC%84%BC%ED%83%80%EC%9A%B0%EB%A1%9C|참고 자료]] * I-37의 격침한 상선 포로 납치,학대,살해 사건 * I-26의 격침한 상선 포로 납치,학대,살해 사건 * I-12의 격침한 상선 승무원 살해 사건 * 저장성 장쑤성 대학살(1942) [[둘리틀 특공대]]의 일본 공습을 도운 중국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은 18만의 병력을 투입해 저장성과 장쑤성 일대에서 약 25만 명의 중국인들을 학살했다. * [[진주만 공습]] (1941)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인데 선전포고가 안 된 상태에서 공격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사실 일본 정부는 선전포고를 시도했다. 다만 암호화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서 결국 진주만 공습 이후에 선전포고문을 전달했다. 물론 선제공격 전이 아닌 후 선전포고는 큰 의미가 없다.] * [[죽음의 철도]] (1942~1943) 연합군 포로와 버마 민간인 20만여 명을 징집하여 건설 노동에 투입한 기간동안 8~10만여 명 사망. * [[치치지마 식인 사건]] (1945) [[식인|문자 그대로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다.]] 같은 일본군의 장성들조차도 미친 짓이라고 일갈했는데 다른 식인과 달리 이건 순전히 재미로 식인을 했기 때문이다. * [[충칭 대공습]] (1938~1945) 일본의 충칭 공습으로 인한 중국 민간인 11,000여 명 사망했다. 미군의 [[일본 본토 공습]]에도 영향을 주었다. * 카비엥 학살 [[http://yangsp3.egloos.com/5804348|자료1]], [[http://yangsp3.egloos.com/5804567|자료2]] (1943) 라바울 일대에서 벌어진 [[미네카제급]] 구축함 아키카제 승무원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 학살 이유는 "연합군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애매한 논리였다. 피해 민간인들의 국적도 다양했는데 여기까지는 흔한 일본의 전쟁범죄였겠지만, 어이없게도 이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동맹국이었던 독일 국적의 민간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에 병원을 건립하고 의료기술을 전파하던 선교사, 수녀들이었다. 원출전은 다나카 유키의 <히든호러>. 자세한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Japanese_destroyer_Akikaze|아키카제]] 참조. * [[팔라완 학살]] (1944) 1944년 12월,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자행된 미군 포로 집단학살. * [[헬 쉽]] 2차 대전 기간 포로수송선을 일본군이 고의침몰시킨 사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